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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긴글

언론의 진실과 왜곡 사이에서...

   
 평소 전화 한 통 안오던 핸드폰이 4월 들어 유난히 제 일을 수행했다. 연일 보도된 '우울한 캠퍼스'에 관한 기사들을 접한 일가 친척들로부터  필자의 안부전화를 받은 까닭이다.

 평소 의견 일치를 보기 힘들었던 언론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서남표 총장의 개혁'이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는 “가혹하리 만치 매서운 개혁 정책에 피로감을 느낀 학생들 사이에서 올해 들어 네 명이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개혁에 대한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라며 서총장의 개혁에서 잇다른 사건들의 원인을 찾았다. 학점에 목메여 친구들과 제대로 놀지도 못한다는 일련의 기사들로, 카이스트 학생들은 '우울하고 불쌍한 공대생'이 되었다.

언론이 만들어낸 스토리 속의 주인공이길 거부한 학생들
 

 하지만 이러한 보도는 학생들로부터 큰 반발을 샀다. 언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을 그려내고, 그들이 팔고자 하는 스토리를 위해 카이스트를 이용한다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사례 1.  "사적 의견을 피력하고 싶다면 여기에 실컷 쓰세요. 아니면 사적 매체인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쓰시든지요. 언론은 공적매체고 언론에서 흘러나오는 소식으로 사람들은 우리 학교를, 우리 학생들 전체를 평가합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함부로 언론과 접촉하지 마세요.. "(ARA에 게시된 ID 1067의 글)
 
사례 2. "요즘 언론들,특히 댓글들 보면 정말 화가 솟구칩니다. 카이스트 내부 사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무조건 서총장님 욕하고 언론들은 자살의 정확한 원인은 알지도 못한채 무조건 '경쟁' 때문에 발생한 부작용이라고... 이런면만 부각시키고 다들 그저 자기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입맛에 맛게 조리하고 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더군요. " (ARA에 게시된 ID francis0403의 댓글)

사례 3. 
#Kaist의 문제가 해결책없이 둥둥 떠다니기만 하는 것도 싫지만 잘 알지도 못하는 외부세력들이 이때다 싶어서 자기 입맛 맞춰 해석하는 거는 더 싫다. 구역질난다. (Twitter에 게재) 


  안타까운 점은, 언론 스스로가 학생들로 하여금 불신을 갖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자기가 겪은 일에 대해 불합리한 왜곡행위를 당한 학생들이 어떻게 언론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앞으로도 그들은 언론을 '스토리'를 만들어 파는 곳이라 여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학생들의 감정은 이어지는 일련의 결정단계에서 영향력을 끼친것으로 보인다. 일부 학생들은 서총장을 반대하는 의견은 '외부세력에 동조'하는 것으로, 학교 정책에 대한 비판은 '자살 사건을 빌미로 삼은' 시정 요구로 여기기도하였다.
 

 언론이 선사한 불쾌한 감정과 분위기로, 카이스트의 미래를 위한 학생들의 논의는 그 시작점을 잃어버렸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학내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수렴하고 이를 학교측과 상의하기는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서울에서 떨어져 대전이라는 지방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는 KAIST에서 일어난 안타까운 사건 덕택에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KAIST의 학생으로서, 언론 보도의 진실와 왜곡 사이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게되었다.

보도에서의 진실은, 전하는 사람의 의도와 받아들이는 사람의 관점이 만나 생성된다.
 사실과 진실의 사이는 백지장 한 장의 차이와 같다.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보도는 자칫 사건의 본질을 가릴 수 있다. 누군가가 구속되었다는 단순 사실에 가려진 범죄의 이유 그리고 그것을 강요한 사회의 책임 등을 묻는 과정은 '사실'을 넘어 '진실'에 다가갈 수 있게 도와준다. 하지만 반대로 이러한 언론의 포커싱으로 원하지 않는 사실만이 부각되고는 한다. 이번 KAIST 사태에서 언론은 "학교 당국으로부터 공부를 강요받아 불행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독자로 하여금 '진실'에 더 가까운 메세지를 준다고 믿었을 것이다.
 반면, 카이스트 학생들이 우려한 바와 같이 신문사의 관점에 따라 사건이 편파적으로 보도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굳이 왈가왈부하지 않더라도 많은 시민들이 직접 겪어왔을거라 생각한다. 어느 기업의 정책에 대해서 그것이 기업의 소득 증대와 경제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보는 관점이 있는가 하면, 비정규직 노동력 착취과 인근 소규모 가게들을 힘들게 하여 서민경제를 악화시킬 수 있음을 말할 수도 있다. 또는 국가 정책에 대해서도 각각 지역과 기관의 이익에 따라 자기에게 맞는 '진실'을 유통시킬 수 있다.

무엇이 진실이고 공정한 보도인지 우리는 정의내릴 수 없다.
 그렇기에 이러한 언론들의 활동에 대해 비판 할 수 있을지언정, 비난할 수는 없다. 필자 또한, 특정 이익집단에 편파적인 기사를 내보내는 특정 언론사들을 신뢰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판단의 근거 또한 필자의 경험과 배경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부분이기에, 100% 옳은 판단일 수는 없을 것이다.


 언론 보도의 중심에서,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의견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속에서 이에 다양한 반응을 보인 KAIST 학생들의 태도로부터 시작된 이 글은 여전히 의문을 품고 있다. 이 질문은 '우리'를 향한다.
매일 수많은 기사들을 받아들이는 독자로써, 우리는 그 것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해야 할 것인가?





 
[ 참고 : 언론 보도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도 ]
(개인적인 시선임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1. 언론의 집중 보도
  •  KAIST 학생들의 자살 사건을 '서총장의 개혁 정책'에 의한 것으로 규정하는 보도를 내보냄
  •  과도한 개혁 정책에 힘들어하는 캠퍼스를 그리기위해, 선별적으로 인터뷰를 하고 '학업과 무한 경쟁속에 지친 학생' 이미지를 생산
  •  이러한 기사를 접한 정치권 및 지식인들의 규탄 - 서총장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날 것을 요구. 학생의 창의력을 키워줄 여력을 주지 않고, 학점 경쟁을 시키는 경쟁위주의 제도를 비판. 차등적 등록금제도와 영어수업에 집중.

2. 학생들의 비판
  • 돈을 위해 학점만을 바라보며 공부하지 않았다. 친구와의 추억도 없는 불쌍한 공대생으로 그려졌음.
  • 네 학생의 자살사건과 KAIST 개혁 정책의 '직접적' 연관고리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오직 그것에서만 원인을 찾고 있음.
  •  학교 내 사정에 대해 정확하게 모르는 외부인사들이 사태해결을 위한 서남표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음 - 만약, 요구하더라도 학생들이 해야할 것.
  •  신자유주의 등 기존 사회 문제로까지 확대 해석하는 것은, 말하고자 하는 스토리를 위해 이 사건을 이용한 것.

3. 비판에 대한 비판

  • 언론의 태도는 과장되었으나, 그러한 목소리가 있음은 인정해야함. 다른 목소리가 있다면 그것도 공론화 되어야할 것.
  • KAIST의 개혁 정책과 사건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더라도, 지나친 경쟁으로 인한 학내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음, (그들에게 희망과 기회를 주지 못함)
  • 이해관계자에 대한 수용이 필요. 우리는 모두 한 사회의 구성원이며, 특히 KAIST는 국가경쟁력을 높이고자 하는 목표로 지원을 받고 있음.
  • 사건 밖에 있는 외부자가 오히려 사건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음. (내부사람이 항상 최선의 솔루션을 갖고 있지는 않음)

4. 마무리 (다시한번 강조. 개인적 의견)
  • 혁신비상위원회에서 결정. 학교, 교수 그리고 학생이 모여 KAIST의 발전을 도모할 계기가 되길 바람.
  • 3개월이라는 장시간의 레이스가 어떻게 진행 될 지는 미지수. (외부인들의 관심과 압력으로 소통의 문을 연 학교인 만큼, 시간이 흐르면서 그 의지가 사그라 들 수 있음.)
  • 최악의 시나리오 : 혁신위의 결정 사항에 대해 이사회가 수정할 것을 권고하며 거부할 수 있다.